"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를 뜻한다.초기 로마의 왕과 귀족들은 평민보다 앞서 솔선수범과 절제된 행동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특히 포에니 전쟁때에는 전쟁세를 신설, 재산이 많은 원로원들이 더 많은 세금 부담을 감수했다.그들은 제일 먼저 기부를 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수레에 돈을 싣고 국고에 갖다 바쳤다.이것을 본 평민들도 앞다퉈 세금을 내게 됐다.끊임없는 전쟁으로 국고가 바닥이 나자 전시국채를 발행, 유산계급과 원로원 의원 및 정부요직에 있는 사람들만 구입토록 했다.평민들에겐 전비 부담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다.또 평민들보다 먼저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미덕은 중세와 근대 사회 에서도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의 표본으로 간주됐다.사회가 혼란에 휩싸이면 대중들은 본능적으로 움츠리며 소극적 자세를 취한다.이를 "방어적 퇴각"(Defensive Retreat)이라고 한다.최근 경제위기를 맞은 우리나라에서 사회지도층 인사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가 강조되는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다

영국의 앤드류왕자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왕실 앤드류 왕자가 조종사로 참전해서 커다란 화제를 불러모은 일이 있다. 또 오늘날 미국 몇몇 사립대학은 사회적 저명 인사들로터의 기부금이 넘쳐나고 있다. 한 사회의 상층부가 이렇게 솔선수범하는 것을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 한다. 프랑스어에서 파생한 이 말은 `고귀한 신분에 따른 윤리적 의무'를 뜻한다.

상층 집단이 이런 의무와 덕목을 갖춰 왔던 것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서구 상층은 과거 중세 귀족 신분으로 누려 왔던 특권들이 부분적으로 약화됐더라도 여전히 경제적 부의 상당 부분을 소유한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상위 1% 집단이 전체 부의 30% 정도를 소유하고 있으며, `상층의 상층'이라 할 수 있는 1% 집단이 현대판 노블리스를 이루고 있다.

이 상층 집단은 단순히 경제적 부만이 아니라 교육과 연줄망에서 일반 국민과 뚜렷한 차별성을 갖는다. 어느 나라이건 상층 집단은 유명 사립고교와 명문 대학에서 교육받아 강력한 연줄망을 형성해 왔다. 게다가 이들은 자기 집단 안에서 배우자를 찾는 통혼 전략을 통해 그 연줄망을 강화해 왔다. 경제적 부와 사회적 위세를 독점하는 만큼 이들은 이에 대한 윤리적 의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컨대 노블레스 오블리제란 상층 집단의 바람직한 태도이자 전략이다. 이들은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윤리적 덕목과 부의 사회적 환원을 강조해 왔으며, 이것이 다름 아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통을 이뤄 왔다.

이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대해서는 상이한 견해가 존재한다. 한편에서 그것은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상층 집단의 규범적 태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상층 집단의 보수주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이라고 비판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급속한 산업화의 결과 현대식 상층 집단이 형성돼 왔다. 하지만 한국의 상층은 오히려 `오블리제 없는 노블레스', 즉 `의무를 망각한 신분 집단'에 가깝다.

우리 상층의 이런 특성은 무엇보다 화폐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국식' 천민문화에 기인한다. 이 천민문화는 기실 `천민적 졸부'의 문화이며, 이들에게 오블리제란 경제적 낭비이자 사회적 과시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다만 최근 기부 활동을 포함해 상층 집단 일부에서 부의 사회적 환원이 점차 늘어나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더욱이 그것은 소박한 자선 행위를 넘어서서 재단 창립과 기부문화 정착 등으로 제도화되어 가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자기의 위치에 따른 책임을 자각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윤리다.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를 다할 때 사회적 위치는 자연히 빛나 보이는 법이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